검색 입력폼
요즘책방(93) 장미의 이름은 장미, 다섯 번째 감각
나지운 기자    작성 : 2022년 02월 03일(목) 10:09    게시 : 2022년 02월 04일(금) 10:33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은희경

은희경의 소설에서 우리는 대체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을 발견한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고 말했던 <새의 선물> 속 진희처럼,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속 현주는 뉴욕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을 때 “질문을 던져 정면 돌파를 하기보다는 혼자의 짐작으로 그럭저럭 문제를 풀어나가는”(149쪽) 것을 택한다. 나를 들여다보는 나. 우리는 때론 은희경의 인물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상대방을 ‘왜곡’하고, 상황을 냉소하며 나 자신을 투과하는 눈. 스스로가 ‘독선적 진지함’(작가의 말)이라고 말하는 은희경적인 사람들의 일면이 여행을 만난다면.

이 책은 은희경의 뉴욕-여행자 4부작이다. 오랜 친구의 뉴욕 집에서 짧게 머물기로 한 ‘승아’에게 친구의 집은 상상보다 남루하고, 오랜 우정은 생각보다 얄팍하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이혼을 하고 홀로 뉴욕에서 어학수업을 듣는 마흔여섯의 내겐 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보다 인종도, 언어도, 성별도 다른 ‘마마두’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연극을 쓰기 위해 짧은 뉴욕 생활중인 현주는 영어에 적극적이지 않은 자신에게 점차 흥미를 잃는 ‘로언’의 무관심을 느끼고,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오십대의 소설가인 ‘나’는 뉴욕에서 열릴 문학 행사에 동행한 팔십대의 어머니에게서 그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아연해진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 타인의 색다름을 발견하고, 실망스러운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의 경험. 하지만 기꺼이 이 왜곡을 받아들이는 이들, 그들에게 있어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135쪽) 매 여행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음을 기억하면서도 우리는 다시 떠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은희경이라는 지도 위에, 가장 정확한 내가 좌표처럼 놓여있는 것을 알기에.



다섯 번째 감각

아작/김보영

가끔 같은 판, 같은 쇄의 책을 산다는 게 같은 시기 이 책을 함께 구매한/할 천 명 내외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일로 느껴진다. (책이 절판되는 사무적인 이유는 많고 많지만) 찾는 사람의 시간과 책이 살아있는 시간이 어긋날 때, 책은 시장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책을 놓쳐본 사람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여타의 사정으로 아주 오래 유통되지 않은 김보영의 초기 소설집이 다시 우정의 항해를 시작한다. 12년 만에 복간된 이야기. 봉준호 감독 추천, 전미도서상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던 두 권의 소설집,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에 실렸던 소설을 개고해 다시 엮었다.

“내 상태는 나의 일부다. 바꿀 마음이 들지 않는구나.”(9쪽) 첫 단편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의 첫 장만 읽어도 충분하다. 왜 모든 병이 치료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김보영의 눈으로 다른 감각을 일깨워본다. 다시 책이 유통되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기쁨’을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나는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저 문장이 어떻게 다가갈까?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겐, 책을 살 수 없는 사람에겐, 사람이 아닌 존재에겐... ‘김보영은 인간의 경험에 대해 장르를 바꾸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말대로 김보영의 소설을 읽으면 (청인인 나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새삼스러워지고, 내 발 아래 지표면이 있다는 게 낯설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어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 기쁘다. 김보영의 좋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초판 1쇄, 그 이후 2쇄, 3쇄를 함께 읽으며 김보영 소설의 멋짐에 대해 이별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나지운 기자 abc@electimes.com        나지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라이프ㆍ영화 최신 뉴스
많이 본 뉴스
Planner
2022년 2월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